이 글은 도전을 통해 느낀 감정과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아직도 변함없구나, 아직도 변함없군. 나
아일랜드에서 귀국 후, 새로운 분야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했다. 도전에 앞서 나는 호기롭게 계획도 세워보았고, 나름 마음가짐도 단단히 먹었다고 생각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배움은 끝이 없다고 말하며 내게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내겐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두려움이라는 그 큰 벽을 깨던, 넘던, 돌아가던 어찌 됐던 지나가야 할 길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만약 열심히 했는데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사실 스멀스멀이 아니라 지배적이었고 난 그 일부를 보고 스멀스멀이라 생각한 거 같다. 생각이 행동을 만든다고 저런 생각은 도전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져 안일하고 게으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계획만 세우는 삶을 또다시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젠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다들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난 그 어른이 되는 것도 두려운 일인가 보다. 맨날 새로운 도전에 맞서야 하니까. 이미 육체는 어른인데도 아직 어린 생각을 갖고 있는 건가 싶다가도 그런 생각도 결국 다 개인차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토닥인다. "나이에 걸맞은 생각"이란 말 자체가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일종의 기준점이 된 것 같아서 늘 그 기준을 따르려 했다.
세 마리의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 사냥을 하던 도중 한 마리가 뛰쳐나갔다. 사냥개 습성 상 사냥개 무리 중 한 마리가 뛰쳐나가면 나머지 사냥개들은 그 모습을 보고 무작정 달려 나간다. 그렇게 나머지 사냥개들도 뛰쳐나갔다. 몇 분후, 맨 처음 뛰쳐나갔던 한 마리는 계속 달렸지만, 나머지 두 마리는 얼마 가지 못하고 다른 사냥감을 찾기 위해 땅에 코를 박고 킁킁댔다. 맨 처음 뛰쳐나간 사냥개는 토끼를 보고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난 한 세 번째 사냥개 정도 되는 거 같다. '쟤는 저렇게 저 나이에 저런 걸 했네? 난 뭐했지?"라는 끊임없는 비교와 나를 향한 채찍질은 나를 낮아지게 했다. 나의 목표가 아닌 남의 목표를 보면 금방 지친다는 걸 잘 안다. 알고도 해결하지 못했던 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번엔 나이에 걸맞은 생각과 비교가 아닌 더 이상 나 스스로가 이렇게 살기는 싫어서 당장 독서실을 알아봤고, 편한 곳으로 정기권을 구매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직접적인 기도를 했을 것 같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꼭 합격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이다. 지금은 "결과야 어찌 됐든 열심히 할게요."라고 연신 기도해댔다. 사실 교회 안 다닌 지 10년이 넘어갔지만.
그 결과
2020년 7월 25일 자로 시험을 마쳤고, 가답안을 통해 어느 정도 답을 맞혀볼 수 있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알고 쌓였던 짜증과 분노들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가라앉았다. 이상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게 바로 포기하면 편해라는 마인드인가? 싶더라. 차분히 생각을 돌이켜보니 난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다했고 결과야 어찌 됐던 후련하더라.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는 멘붕에 빠졌으나 이내 8월은 어떻게 살 것인지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번엔 도전하는 양도 많아졌고 난이도도 높지만 두려움은 전보다 덜했다.
과정보단 결과를 최선보다 최고를... 맞는 말이다. 보이는 건 결과니까. 하지만 보이는 것만이 중요할까?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에 보이는 것이 더 빛나 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문득 영화 [사바하]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
- 영화 사바하 中 -
지금 당장 좋은 결과인 보이는 것은 내게 없지만 보이지 않는 면인 과정에선 배운 점이 3가지가 있다.
첫 째는 아직 생각보다 머리가 굳지 않았다는 점.
둘 째는 이제는 계획만 하지 않고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셋 째는 예전엔 좋지 못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부정했지만 지금은 금방 잊을 수 있게 된 점.
이별 통보에 질척대고 새벽 두 시에 "잘 지내?"라고 문자 보내는 구 남자 친구 티를 조금은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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