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obby is writing

미생

Supreme_YS 2021. 3. 28. 20:37

몇 년 전 유행했던 드라마 '미생'을 이제야 보았습니다. 시간 관계상 드라마 회차별로 짤막한 클립 연상들을 통해 회차별 이슈들을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만화 미생이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기대감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드라마화를 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순 없었습니다. 역시 드라마여서 현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굉장히 현실성 있게 드라마를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1화부터 20화까지 모든 클립을 시청한 후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먼저, 바둑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바둑에는 우리 인생과 닮아있다.'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둑에서는 흔히 한판의 과정을 초반·중반·종반의 3단계로 나눕니다. 초반은 포석(布石)하는 단계입니다. 포석이 끝나면 본격적 전투 단계인 중반으로 들어갑니다. 중반전이 끝나면 마무리 작업인 끝내기를 합니다. 이 세 단계는 종종 인생살이에도 비유됩니다. 초반은 직업전선에 나가려고 교육을 받으며 준비하는 시기에 해당합니다. 중반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30대에서 노년기에 접어들기 전까지의 기간입니다. 종반은 노년기를 가리킵니다. 대략 인생의 각 단계는 30년 정도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초반 포석이 너무 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둑의 3단계 중에서 마지막의 종반 단계는 약간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둑 팬들은 초반에 구도를 짜는 포석과 중반의 본격적인 싸움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합니다. 반면에 종반은 밋밋하게 마무리하는 작업 정도로 치부한다고 합니다. 이 또한, 저와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둑을 인생이 아닌 제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를 초반, 중반, 종반으로 나눠보면 그렇습니다. 항상 초반엔 열정과 의욕을 지니고 일에 임합니다. 중반에 들어서 치열하게 임하고, 늘 마지막 그 마지막 뒷심이 제게 늘 부족했습니다. 모든 일에 마무리는 늘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드라마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많이 반성했습니다. 항상 마지막 뒷심 부족으로 일을 흐지부지 만드는 것. 어떻게 보면 그것도 재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흐지부지되어서 오히려 제게 좋은 영향으로 다가온 적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다시 관점을 넓혀서 제 인생은 이제 바둑에서 중반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돌아보면 정말 매사에 열심히 했습니다. 드라마 주인공 장그래의 독백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이 말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은 열심히 했지만 결국 프로 바둑 기사 입단에 실패했고, 결국 회사로 나온 것입니다. 분명히 주인공은 열심히 했습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하지만 주인공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핑계더군요. 내가 열심히 안 했다고 해야만 내가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이유를 만들 수 있으니까. 현재 커리어 전환을 준비하는 제게 많은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여러 기업의 다양한 면접을 보고 불합격 문자를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고 난 후, 큰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그래, 다른 지원자보다 부족했으니까 내가 떨어진 거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이런 생각은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열심히 해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노력해도 안 되겠다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일으켰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들이 저만 가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취업준비생, 고시생, 여러 가지 자기 분야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생은 많은 공감을 줄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들은 우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뿐만 아니라 다른 글들도 마찬가지죠. 글 쓸 때 가장 솔직해지는 것 같은데 솔직한 감정이 요즘은 우울이라는 것이 씁쓸하네요. 하지만 이 공간에서라도 짤막한 글들을 통해 제 맘속에 있는 우울을 표출하는 행위들이 제게 다시 시작할 힘을 줍니다. 이 힘을 통해 일의 종반에 박차를 가하려고 노력할 것이며, 이 노력은 제 인생의 중반을 잘 설계하여 멋진 종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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